공중의제와 연관된 생각들...

 

Public Agenda란 무엇일까. 우리말로는 ‘공중의제’, ‘공공의제’라 불리는 퍼블릭 아젠다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콤&엘더, 아이스톤과 같은 학자들은 공공 의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나 이슈가 공공의 관심을 끎으로써, 공공정책의 형성을 위하여 논의될 수 있는 상태에 놓일 때를 Agenda에 위치한다고 말했다. 매스 미디어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행 이슈에 대한 공중의 생각과 토론을 설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정리해 보면, Agenda Setting(의제설정)에 의해 미디어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중요하다고 여기는 주제(미디어의제)를 보도하고 그것이 공중에게도 중요한 주제(공중의제)가 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중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이슈화되는 주제는 누가 설정하고 어떻게 설정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즉, 과거 공중들은 미디어가 설정해 주는 의제에 국한하여 사회를 바라보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서 여성 성폭행의 심각성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여성 성폭행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 여성 성폭행에 특별히 주의를 갖거나 사람들 대화의 화제가 되는 등의 지각이나 태도의 변화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는 의제 설정 과정에 있어서, 사람들이 알아야 할 주요 주제들을 부각시켜 드러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간혹 정치적, 경제적 등의 요소와 결부되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뉴미디어, 인터넷 등의 다양한 매체의 등장하면서 공중들의 태도와 미디어 환경이 바뀌게 되었다. 미디어와 공중간의 일방향적인 관계가 이제는 네트워크적 관계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공중들은 미디어가 던져주는 의제로는 몸이 근질거리게 되었다. 공중들의 성향 역시 이제 더 이상 수동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사회의 현상과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공중의 의제로 더 나아가 미디어 의제로까지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며칠 전 있었던 한화그룹 김승현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미디어에서 다루기도 전에 소위 ‘누리꾼’이라 불리는 공중들의 움직임으로 한 순간 사건이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되였다. ‘미디어만이 의제를 설정 하는가’ 혹은 ‘미디어의 의제가 공중의 의제가 되는가’의 의문은 의미를 잃었다. 공중과 미디어가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하며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디어가 기능을 잃었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에서 설정하는 의제(주제)가 공중의 의제가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다고 여기는 것도 이 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공중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의제를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 환경이 변화면서 공중들이 능동적이고, 미디어와 쌍방향적인 관계가 성립되면서 미디어에서 부각시키지 않는 의제도 공중들이 부각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의제는 미디어만이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by 렉이 | 2007/05/17 23:46 | 트랙백 | 덧글(0)

정말 수다만 떨다가는 그녀들

 

 

정말 수다만 떨다가는 그녀들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총 27개국의 외국인 여성. 16명의 그녀들은 최소 4개월부터 최대 10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웬만큼 한국을 경험해봤다는 그녀들이 한국 경험담을 솔직담백하게 담은 프로그램이 바로 <미녀들의 수다>다. 그러나 정작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녀들이 느꼈던 한국의 독특한 모습에 웃어야 할지, 그녀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 웃어야 할지, 이 둘도 아니면 미녀들이 가진 예쁜 얼굴과 매끈한 다리에 웃어야 할지 당최 헛갈리기만 한다. ‘한국’을 말하겠다던 기획 의도는 찾기 어려운지 오래다. 


  가장 먼저 출연진들인 미녀들이 한국을 이야기 하는 목적을 망각하고 웃음과 인기를 얻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4월 15일 ‘한국의 아르바이트’란 주제로 수다의 방이 열렸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해보았던 엑스트라, 전통춤, 과외 아르바이트 등의 이색 아르바이트 체험담을 털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체험담은 그저 단순한 경험담의 공유 또는 목적 없는 수다일 뿐이었다. ‘한국은 어떻다’, ‘다른 문화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러한 독특한 점이 있다’ 등의 평가가 없었다. 사적인 이야기이면서 단지 재미가 있는 에피소드의 폭로였다. 자신의 등이 가려워 대신 긁어줄 사람을 찾듯이, 한국인 스스로가 모르는 모습을 시원, 유쾌하게 말해줄 외국인을 찾아 TV앞에 자리 잡은 시청자들을 오히려 민망하게 만들었다. 


  <미녀들의 수다>가 초심이 흐려진 데에는 제작진의 잘못도 꼽을 수 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도 카메라는 끊임없이 흑인 여성보다는 백인 여성을 위주로 카메라를 잡는다. 준연예인급의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들을 담아 시청률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들의 ‘미(美)’를 담아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소피아’ 허벅지 노출 논란이 초기 기획 의도를 잃고 나태해진 제작진을 꼬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녀들의 인기에 힘입어 상업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기획사들의 새빨간 의도까지 더해져 본래의 그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색을 잃었다.  


  시청자들은 결코 그녀들이 한 주간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서 TV를 보는 것이 아니다. 웃음에만 초점을 두어 말하는 수다를 들어줄 아량은 더더욱 없다. 매년 특집방송 때마다 등장하는 외국인의 식상한 장기자랑과 어설픈 한국말에서 탈피하고자 했다면,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이 처음 기획의 의도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만 기억한다면 심기 불편한 시청률의 성적표를 받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한창 인기의 상한선에서 잠시 갈 길을 잃은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을 말하겠다는 초심이다. 앞으로 시원하게 등 긁어줄 <미녀들의 수다>를 기대해 본다.

by 렉이 | 2007/05/09 12:26 | 트랙백 | 덧글(0)

서울신문, 고르는 재미 VS 버거움의 피곤함

 

서울신문, 고르는 재미 VS 버거움의 피곤함



독자들에게 맛있는 정보와 신선한 뉴스를 전하겠다는 서울신문이 요즘 뜨겁다. 작년 8월, 서울신문은 수도권 및 지역 자치행정 소식 분야를 특성화하는 변화를 꾀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독자들의 기대에 부흥하여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의 실천을 보이고자 부단히 노력 해왔다. 그 결과 언론으로서 새로운 입지를 가지게 되었고 영향력 있는 매체로 부상하게 되었다. 새 단장으로 탄력 받은 서울신문, 그 동안의 탄력이 오늘의 서울신문에게 과연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진단해 본다.

한 주간 서울신문은 정신없었다. 대선후보자가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퇴직을 앞 둔 공무원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떠한지 세세하게 다루었다. 자치구 주최 행사 소식부터 국제 사건․사고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다양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의욕이 크게 앞서서였을까? 아니면 독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였을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서울신문의 도약이 바다가 아닌 산으로 가고 있었다. 


  20&30, 문화기획, 비즈&피플 등 예로 들기에도 많은 특집기사들이 한 주간 지면에 쏟아졌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울신문의 봉사심을 높이 사는 바이다. 그러나 충성심이 방향을 잃고 산을 향하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소식들 중에서 독자들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이 원하는 뉴스를 뽑아 제공할 때 비로소 뉴스의 가치가 살아나게 된다. 이것이 언론의 가장 으뜸이 되는 기능(의제설정의 기능)이다. 자치구의 소소한 행사까지 뉴스 기사로 다루는 신문을 보면서 독자는 광고지면인지 기사 지면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뉴스까지의 제공은 ‘고르는 재미’가 아닌 오히려 ‘버거움의 피곤함’을 주게 될 뿐이다.  


  많은 뉴스를 다루다 보니 뉴스의 심층성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지난 17일 화요일자 <20&30> 기획물에서는 개인별 독특한 해장 노하우에 대해 보도하였다. 약 1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만의 해장 비법을 공개하는 형식이었다. 문제는 그 공개가 단순 나열식 보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공개한 해장 비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혹은 과학적으로 옳은 해장은 무엇인지 등 해장법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설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얕은 수준의 정보제공의 홍수는 국민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떨어뜨리고 흥미성의 기사만을 선호하게끔 조성한다.   


  서울신문만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기사의 제공은 독자들로 하여금 실생활의 유용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의욕이 앞장서고 주장만 많으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법. 사회의 영향력을 끼치는 언론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본 기능과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봉사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에 언론은 어떻게 부응하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아는데 더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공들의 충성과 열정이 독자를 향하고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기자들의 충성심을 기다리고 있다. 단, 그 기다림이 늘 한 결 같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by 렉이 | 2007/05/09 12:25 | 트랙백 | 덧글(0)

반갑다! 일요일 신문 <중앙선데이>

 

반갑다! 일요일 신문 <중앙선데이>


   

선진국이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 독자들의 정보 갈증 해소? 정보 중의 정보, 지식 선도층을 위한 고품격 정보 제공? 중앙일보가 파격 변화를 시도했다. 신문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만 발행된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일요일판 신문 창간을 시행하였다. 이로써 독자들은 일요일에도 정보에 굶주리지 않고 따끈따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편, 한 주간을 해석,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중앙일보의 일요일판 신문 <중앙 Sunday>가 과연 정보 홍수, 범람의 시대에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갖고 올 것인가?

작년 10월 초, 북한은 세계가 우려했던 핵실험을 강행했고,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핵실험을 했던 그 날은 신문이 쉬는 휴일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의존하여 정보를 획득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정보를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이 되서야 비로소 접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그나마 나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신문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는 오로지 TV뿐이었다. 언론의 가장 큰 기능이자 존재의 이유가 사람들에게 뉴스(news), 즉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휴일에는 그 기능도 덩달아 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문에도 일요일(휴일)이 있다’는 방식 안에서 지금껏 독자들은 신문을 단지 월요일~토요일까지만 의존해야 했다.

일요일의 정보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나선 것이 중앙일보의 일요일판 신문 <중앙선데이>이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일요일판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미국의 <The NewYork Times Sunday>와 <The Washington Post Sunday>, 영국의 <The Sunday Times>, 독일 <Sonntag Der Tagesspiegel>, 일본의 <아사히 신문>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신문의 발행 부수와 판매량을 따져보았을 때, 일요판 신문은 평일판 신문을 능가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다. 중앙일보가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일요일에 배달되는 신문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고 선진국에서는 평일보다 일요일의 신문 구독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일요일판 신문 뉴스’가 생소하면서도, 파격이라면 파격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중앙일보가 그 스타트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신매체사업본부를 만들고 각 분야의 전문성 있는 기자 30명가량의 편집국을 구성하면서 일요판 신문뉴스를 준비하였다. 기존 신문매체의 주말판과는 달리 별도의 매체를 창간하여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신매체사업본부는 일요일로 인한 독자들의 신문 뉴스 공백기를 채우고 평일 신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질 높은 기사와 한 주간을 정리해 주는 뉴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하였다. 따라서 콘텐츠도 일부 매거진 형식도 있기는 하지만 기존 언론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각 분야 한 주의 사건을 심층 분석하고 정리하는 뉴스 중심으로 나올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 측의 말이다. 이러한 준비로 지난 3월 18일부터 <중앙선데이>는 매주 독자들에게 배달되고 있다.

일요일의 뉴스 전달 뿐만 아니라 한 주간을 정리하고 다음 주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의 제공이 <중앙선데이> 의도이자 창간의 가장 첫 번째 이유이다. 중앙일보사 자체 심층 면접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보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오히려 더 정보에 목말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독자들은 이러한 정보의 범람으로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느끼며, 이에 따라 꼭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줄 신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멀티 미더어를 통해 수시로, 마음껏 많은 뉴스와 정보를 접할 수는 있지만 정작 머리에 남는 알찬 정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의 하소연과 주 5일제의 실행으로 주중보다는 주말에 신문 읽을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중앙일보는 새로운 모험을 선택하였다.

<중앙선데이>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심층보도를 통한 콘텐츠의 고급화이다. 기존 일간들은 매일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를 다루기에도 지면이 모자라다. 하지만 <중앙선데이>는 일간지들과 달리 한 주 동안 일어난 사건 가운데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이슈만을 골라 깊이 있게 취재한 다음 주말에 정리해 보도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요일에 발생했던 사건을 다루는 본래의 임무는 기본으로 하면서이다. 핵심 이슈를 파헤치는 포커스(FOCUS), 특정 인물·조직·이슈 가운데 하나를 골라 16페이지에 걸쳐 철저히 파헤치는 특별 보고서 스페셜 리포트(Special Report), 읽는 재미를 통해 주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 교양지 매거진(Magazine) 등 총 3가지 섹션으로 나눠 한 주간을 총 정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앙선데이> 신문이 앞으로 언론 환경과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와 파장을 가지고 올까? 무엇보다도 일요일에도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심층 분석을 한다는 점에서 언론 분야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올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각종 분석 및 해설을 접할 수 있다. 타 신문 매체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중앙선데이>를 견제하기 위해 뉴스의 보도와 해석에 더욱 충실하게 할 것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신문매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신문 개별 매체의 경쟁력 획득을 넘어서 더 나아가 인터넷 정보의 시대로 인해 급속도로 추락했던 신문 언론의 영향력도 상당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간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뉴스의 등장으로 신문의 구독률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에 따라 신문 시장이 눈에 뜨게 크게 위축되었다. 오늘날 신문 매체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급격히 변하는 사회에서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전달하는 TV와 인터넷에 신문의 이용은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주말에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매체는 TV와 인터넷이기 때문에 신문의 영향력은 더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중앙선데이>의 등장으로 일요일에도 뉴스를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문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심층 분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언론매체로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에는 일요일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부정적인 기사를 의도적으로 주말에 흘려보내 사람들의 관심을 적게 받았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정보 보급으로 예전과 같이 사건의 이슈화나 책임회피 등을 막기 힘들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주말에

 그러나 ‘처음’이라는 단어의 신선함만큼 그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측에서 가장 큰 난관은 바로 경제적인 문제이다. 주말판 광고시장의 개척 부담 및 불투명성 때문이다. 여기에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져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 기존 종이매체의 부진으로 광고시장의 전망도 밝지 않은 가운데 증명되지도 않은 새로운 시장에 가능성만을 믿고 선뜻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경쟁 신문사 한겨레는 중앙일보와 같은 시기에 주말판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포기하고 문화섹션으로 선회할 것을 밝힐 정도이다. 이에 대해 중아일보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할 경우 충분히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다면서 외국의 일요판 신문 시장을 사례로 들고 있지만 말 그대로 그 결과는 미지수다.

<중앙선데이>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와 불만도 흘러나오고 있다. <중앙선데이>는 기존 일간지와는 구별된 고품격, 고급의 퀄리티 페이퍼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가장 부각하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지금도 심각하게 벌어진 계층 간의 지식 격차를 더 벌리는 것은 아니냐는 입장이다.

<중앙선데이>의 구독료(정보이용료)는 한 달에 5000원이다. 일반 일간지 한 달 구독료가 12,000원이라는 점에서 주말판이 주중판보다 약 2배정도 비싼 격이다. 이용료도 기존 일간지보다도 비싸지만 이것보다는 <중앙선데이> 전략이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는 고소득, 고학력층의 정보 요구가 증가한다는 점을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이미 이들을 주 고객층으로 두고 있었다. 광고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보이용료로 다소 비쌀 수도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주 이용층이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이용의 불균형이 다시 지식 격차를 벌리는 악순환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단지 비용 문제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보급(배달)에서도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중앙선데이>는 일요일 아침에 배달되는 국내 최초의 고비용 유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부터 전국적 배달망을 갖추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앙일보에서 선택한 것이 우선 서울 강남과 분당, 용인 등 일부 아파트 밀집 지역에만 먼저 배달하고 독자들이 확보되면 서서히 배달 지역을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식의 격차를 간접적으로 벌려놓고 구매력이 있는 기득권의 옹호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중앙선데이>에 대해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전 위원장은 일요판 신문에 광고가 적고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낸다는 것은 중앙이 다른 신문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과도한 출혈경쟁을 조장할 수도 있으며 돈 많은 신문사가 더 신문 시장을 독점하게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성공회대학교 김서중 교수(신문 방송학)도 단순히 흥미나 오락 위주의 보도에 치중하거나 탄탄하지 못한 내용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신문 산업을 오히려 더 위기로 몰아놓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선데이>가 발행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아직까지 일요판 신문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기대했던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 혹은 우려했던 시행착오 외에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언론의 봉사심을 크게 높이 사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왔던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개선해 나아가 앞으로 <중앙선데이>의 일요판이 신문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다매체, 다채널 미디어시대 속에서도 신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다시 한 번 도약하고 입지를 굳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by 렉이 | 2007/05/09 12:22 | 덧글(0)

종합부동산세, 국민들에게는 전쟁보다 더 한 폭탄

종합부동산세, 국민들에게는 전쟁보다 더 한 폭탄



 

“다음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경제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현재 참여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었다. 최근 매일경제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9.8%가 종부세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현행 종부세의 불합리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크다. 국민에게 종부세는 살림을 지켜주는 안정책이 아닌 그저 골칫거리 이상의 공포일뿐이다. 


  국민들이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첫 번째 이유로는 ‘과다보유’를 억제하겠다는 무리한 정책 목표로 인해 초래된 구조적 문제이다. ‘과다보유’의 정도를 판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얼마 이상을 과다한 것으로 볼 것인지에 그 기준이 모호하기만 하다. 그 예로, 종부세는 현재 6억 원 이상 집값에 따라 차이를 둔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세금을 거두어 세수가 부족한 지역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왜 6억 원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날리고 있다. 또한 서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투기성이나 사치성이 높은 고가 골프회원권에는 왜 보유세를 부과하지 않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또한 건물과 나대지로 적절히 나누어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과다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세 부담 상한액을 계산하여 세금을 냈는데도 추가로 내는 이른바 ‘이중납부’ 현상을 발생하게 하고 있다는 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같은 과세주체가 동일한 과세 물건을 대상으로 같은 납세 의무자에게 중복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위헌성을 떠나 무효라는 것이다. 종부세는 세금의 기본 원리를 위배하고, 지방자치의 흐름까지도 역행하고 있다. 부적절한 세금 징수의 부담만 국민들에게 안겨준 채 국가는 해결 방안 없이 무조건 납부해야 한다는 압력만 하고 있는 것이다. 토지와 주택을 과다 보유한 자에게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과세의 부담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에게는 등골 휘게 하는 정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핵폭탄보다 오히려 이중, 삼중으로 세금 징수하는 정부가 더 무서운 폭탄이라는 것을 어느 누가 상상이라 했겠는가. 정부는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수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에서 이들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금 과징 납부로 열심히 살고 있는 서민들의 생활고를 늘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 말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지금 정부가 발 등에 떨어진 부동산 문제 잡으려다 일반 서민 잡는 딱 그 꼴이다.             


by 렉이 | 2007/04/21 08:5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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